율러비 딕스의 초상화 (Portrait of Eulabee Dix) by Gertrude Käsebier - 1910년 경 - 7 7/8 x 6 in 율러비 딕스의 초상화 (Portrait of Eulabee Dix) by Gertrude Käsebier - 1910년 경 - 7 7/8 x 6 in

율러비 딕스의 초상화 (Portrait of Eulabee Dix)

젤라틴 실버 프린트 • 7 7/8 x 6 in
  • Gertrude Käsebier - May 18, 1852 - October 12, 1934 Gertrude Käsebier 1910년 경

오늘은 일요일이네요! 국립 여성 예술가 미술관의 컬렉션과 함께하는 특별한 한달은 계속됩니다. :)

거트루드 케제비어(Gertrude Käsebier)의 사진 초상화 속 미니어처리스트 율러비 딕스(Eulabee Dix)는 직업 예술가라기보다는 그저 우아하고 부유한 여성 같아 보입니다.

이 초상 사진의 풍부한 색조가 모피털의 광택, 벨벳 코트의 부드러운 플러시 천, 베일의 비단 그물망을 돋보이게 하네요. 이런 아름다운 옷은 확실히 딕스의 성공을 암시합니다. 이 그림보다 10년 전에 작업된 자화상인 Me 에서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딕스는 확신과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관객을 똑바로 응시합니다.

딕스가 케제비어를 위해 포즈를 취한 이 때, 딕스는 이미 미니어처 부흥 주의를 선도하는 예술가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딕스는 케제비어를 자신의 숙련된 상아 수채화 초상화(watercolor-on-ivory portraits)를 좋아하는 저명한 모델 중 한명으로 여겼습니다. 딕스는 풍파가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1929년 주식 시장 붕괴 이전까지 그녀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식 시장 붕괴로 인해 그녀의 부유한 고객들 중 상당수가 재산을 잃으면서 그녀의 작업도 큰 영향을 받았고, 결국 그녀는 서민층 동네로 이사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항상 화려한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들었다고 합니다. 1930년대, 미니어처주의가 시들어가자 그녀는 미니어처 페인팅의 예술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또한 새 시대에 맞춰 꽃 정물화와 대형 유화 작업으로 자신의 기술을 전환했습니다. 1956년, 78세의 딕스는 재산을 팔아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이주했지만 1961년에 아들 부부와 함께 살고자 미국 코네티컷주 우드버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그해에 별세했습니다.

P.S. 오늘은 저희의 인스타그램을 꼭 한번 확인해보세요. 율러비가 만든 놀라운 미니어처를 보실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