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초상화가 그려진 해에 그 모델 루냐 체코프스카(Lunia Czechowska)는 스물다섯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폴란드의 애국자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에 의한 조국 폴란드의 분할을 맹렬히 반대했어요. 191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루냐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파리로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역시 최근에 폴란드에서 망명 온 애국자 카지미르 체코프스키(Kazimierz Czechowski)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1915년 6월 21일에 그와 결혼합니다. 체코프스키는 모딜리아니의 그림 거래상인 레오폴드 즈보로프스키(Léopold Zborowski)의 친구였어요. 둘은 이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모딜리아니는 루냐의 초상화를 여러 작품 그렸습니다. 우리는 루냐와 모딜리아니가 친구였던 것이 루냐가 모딜리아니의 뮤즈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모딜리아니가 따로 모델을 구할 돈이 없었기 때문인지는 알지 못해요.
아마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는 누드화와 초상화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그림 속 길게 늘어진 얼굴과 신체 묘사에서 그의 특징적이고 현대적인 스타일이 명확하게 드러나요. 많은 위대한 화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그의 짧은 생애 동안 그리 많은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35살에 사망했어요.) 루냐의 이 초상화는 그의 특징적인 스타일로 그려졌습니다. 백조와 같은 목과 기울어진 머리는 16세기 이탈리아의 대가들인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와 폰토르모(Pontormo)의 매너리즘 양식을 떠올리게 해요. 모딜리아니가 아프리카의 부족 미술에 매료되어 있었음은 루냐의 타원형 이목구비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얼굴의 눈구멍은 마치 비어있는 것처럼 보여요.
루냐와 모딜리아니는 친구가 되었고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연인 관계였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육체적 측면에서 그런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1920년에 모딜리아니가 사망한 후 루냐는 회고록을 출간하였는데, 이 회고록에 모딜리아니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추신 1. 모딜리아니는 수많은 여성들의 관심을 받은 미남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고 관계를 맺었는데요. 그가 가장 사랑한 대상은 후배 화가이자 모델이었던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이었던 듯합니다.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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