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리클리어(Thomas LeClear)의 <초상화가 있는 실내(Interior with Portraits)>는 사진의 출현으로 인해 전통 회화의 오랜 지배가 흔들렸던 역사적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수 세기 동안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화가들에게 의뢰하여 생동감이 넘치며 어떨때는 실물 크기이기도 한 초상화를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1839년 다게레오타입(역주: 사진술 초창기에 은판 사진법으로 찍은 사진)의 발명이 이루어지면서 컬러감은 덜하지만 전례 없는 수준의 사실감을 제공하는 작은 흑백 사진이 대안으로 등장하게 되었죠.
서명도 날짜도 없는 이 그림은 뉴욕시에 스튜디오를 두고 장르 및 초상화 화가로 활동했던 리클리어의 그림인데요. 가족 기록에 근거해서 이 작품이 1865년경에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설이 있는데요. 이 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그림에 묘사된 두 아이의 형이 의뢰하였는데 배경 스토리가 꽤나 복잡합니다. 사실 그림 속 남자아이는 그림에서처럼 어린아이가 아니며 최근의 호텔 화재로 사망한 26세의 소방관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함께 그려져 있는 소녀도 15년 전 청소년 시절에 사망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상당수의 현대 관람객들이 이 남자아이가 마치 보존된 인물처럼 기괴하며, 생기가 없어 보인다고 느낍니다.
생존해 있는 모델이 없는 상황이니 리클리어는 고인이 된 형제자매의 다게레오타입 사진을 기반으로 그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담아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그를 논란의 중심에 놓이게 했는데요. 당시 많은 화가들이 사진 기술에 위협을 느끼고 회화의 고유한 특성을 강조하며 사진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거부했으니, 리클리어는 자신의 작품에 이렇게 사진을 활용함으로써 이 논란에 직접 뛰어든 셈이죠.
이 그림에서 사진작가는 그의 옷 아래에서 습판 카메라를 조작하는 뒷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요, 이 카메라는 1860년 이전에는 없었거든요. 이런 점은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되며, 또한 리클리어의 회화와 사진 사이의 긴장에 대한 의도적인 논평을 암시합니다. 그렇다면 사진술이 이후 몇 년간 예술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그 답은 DailyArt 온라인 강좌에서 확인하실 수 있구요, 지금 25% 할인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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